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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미국과 함께 북아메리카를 구성하며 북부에 위치한 나라. 총 10개의 주와 3개의 준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로 북극과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이며 나라의 상징은 설탕단풍나무(Sugar Maple. 팬케이크의 양념인 메이플 시럽의 원료)와 비버다.


영연방 왕국의 일원으로서 캐나다의 공식적인 국가원수는 캐나다의 국왕인데 엘리자베스 2세가 맡고 있다. 영국 국왕은 영연방의 원수이면서, 영국을 포함한 영연방 왕국 구성국들의 국왕을 겸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영국과 동군연합인 나라와 관련해서는 영국 여왕이라고 하면 안 된다. 즉 영국과 동군연합 상태.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왕이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캐나다의 저명 인사가 총독이 돼서 국가원수 대리를 맡는다. 이것은 영국과 동군연합 상태인 다른 나라들과 동일하다. 영국과 동군연합을 하는 나라라고 반드시 총독을 둬야 하는 건 아니지만 현재 해당 국가들은 전부 관행에 따라 총독을 두고 있다. 흔히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과 달리 영연방 회원국 전체가 영국과 동군연합인 건 아니지만 캐나다는 영연방 회원국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영국의 정치 제도를 본따서 입헌군주제와 내각제를 채택했지만 땅이 넓은 관계로 이웃 미국의 제도를 모방해서 연방 국가가 되었다. 이 모델은 캐나다보다 늦게 자치령이 된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입헌군주제, 내각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캐나다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와 달리 주(州)의 공식 영어 명칭은 state가 아니라 province를 쓴다. 준주는 똑같이 territory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연방에 주로 편입된 곳은 별개의 지역이었던 뉴펀들랜드 자치령(Dominion of Newfoundland)으로 가입한 해는 1949년이다. 본래 뉴펀들랜드 자치령은 캐나다 가입을 거부하고 1907년 독자적인 자치령으로 승격되었고, 1931년에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독립국이 됐지만 세계 대공황의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1934년 스스로 주권을 영국에 반납해 영국 정부의 통치를 다시 받는 안습한 지경에 놓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민투표를 거쳐 캐나다의 주로 가입했다. 이곳은 현재의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Province of Newfoundland and Labrador)이다. 캐나다 가입 당시에는 그냥 뉴펀들랜드 주라고 했으나, 2001년 12월 6일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개정했다. 뉴펀들랜드가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뉴펀들랜드 섬과 북아메리카 대륙 본토에 속하는 지역까지 포함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본토 지역을 제외하고 본토 지역을 래브라도라고 부른다. 원래 옛 자치령과 주 이름은 넓은 의미를 따라서 그냥 전체 이름도 뉴펀들랜드라고 했었던 것인데, 래브라도 주민들이 불만을 가졌던 모양인지 결국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로 명칭을 바꿨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의 우편 코드도 NF에서 NL로 변경됐다.


러시아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보다는 약간 크고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 나라들 합친 면적보다 훨씬 크다. 앵글로아메리카에서는 면적 1위이고, 인구수는 미국에 이은 2위다. 애초에 앵글로 아메리카에 미국과 캐나다 말고 뭐가 있는지 거의 모른다.


또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세계 3위의 산유국이다. 이라크나 아랍 에미리트보다도 석유가 많이 난다. 참고. 다만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단순한 매장량 뿐만 아니라 채굴비용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캐나다는 이 분야의 끝판왕 중동국가들에 비하면 비용이 많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셰일가스 산업의 기술이 한참 앞서있는 것도 아니라서, 15년 기준 유가가 급락하면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침체에 들어갔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그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는 산유국 사람들이 국경과 가까운 도시에 살면 자주 미국에 가서 기름 넣고 온다.


수도는 오타와. 프랑스계 인구가 많이 사는 몬트리올과 영국계 인구가 많이 사는 토론토가 다투다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아예 인구 2만이 채 될까 말까 한 마을 하나를 수도라고 깃발 꽂아서 심시티를 벌인 케이스. 오스트레일리아도 수도를 놓고 시드니와 멜버른이 싸우다가 중간 지점인 캔버라로 정했다. 덕분에 오타와는 도시가 매우 깔끔하다. 현재 가장 큰 도시는 토론토, 두 번째로 큰 도시는 몬트리올이며 그 외에 밴쿠버, 캘거리, 에드먼턴, 퀘벡 시티, 위니펙 등이 주요 도시다.


인구는 한국보다도 적은 3500만 명 수준이라 전체 국토면적으로 봤을 때는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나라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가 한국보다 인구가 적으니 인구 밀도가 어떨지 대충 상상이 가능하다. 참고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방글라데시에는 캐나다의 70분의 1 면적에 캐나다의 5배 인구가 산다. 가장 인구 밀도가 적은 주는 곰이 사람 넷 당 하나 비율로 있다고 할 정도. 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은 도시권역이나 미국과의 국경지대에 몰려있어서 웬만한 도시에서는 대도시 분위기가 난다. 결국 인구 적은 곳의 체감 인구 밀도는 더더욱 낮다는 말.


미국이나 캐나다인이 아닌 이상 다른 지역 사람이 보기에는 영연방 회원국이라는데 미국과 차이가 없는 나라로도 보인다. 십수년을 살아도 캐나다에 사는건지 미국 변두리 지방에 사는건지 햇갈릴때도 있다. 캐나다의 주요 공항에는 미국 출입국 심사대가 따로 있다! 그리고 다른 영연방 국가와는 달리 차량이 미국처럼 우측통행. 이 나라는 원래 지역에 따라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는 곳과 우측통행을 하는 곳이 나뉘어 있었는데 결국 미국을 왕래하는 수요가 많다 보니 우측통행으로 통일시켰다. 어차피 영국에서 캐나다까지 차를 가지고 와서 운전할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미국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결정이었다. 인구도 많고 그만큼 차도 많이 다니는 미국이 캐나다 따라갈 리도 없고 우측통행을 했던 유명한 지역으로 1949년에야 캐나다에 가입한 뉴펀들랜드(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가 있다.


캐나다라는 말은 원래 캐나다 영토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즉 이로쿼아 부족의 말이 어원이다. 이로쿼아 부족의 '카나타(정착이라는 뜻)'라는 단어가 캐나다의 어원이다. 실제 지금도 오타와 근교에 카나타라는 작은 마을이 존재한다. 


캐나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 kanata로 "작은 마을"네? 이란 뜻. 그걸 지명이라 생각한 프랑스인들이 카나다(캐나다)로 명명해버렸다. 이 캐나다라는 명칭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을 영국인들과 구분하여 부르는 말이었다. 몬트리올의 아이스하키 팀 이름이 카나디앵(Canadien)인 것이 그 흔적 중 하나다. 하지만 영국령 북아메리카가 19세기 중반 대영제국 최초로 자치령(dominion)을 구성하게 되면서 캐나다를 퀘벡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연방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 당시 명칭에 대해서 각종 제안이 있었다. 라틴어로 '남쪽의 땅/나라'를 뜻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대칭을 이루게 Borealia(북쪽의 땅/나라)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그레이트브리튼의 옛 이름인 Albion에서 딴 Albionoria(북쪽의 Albion) 또는 New Albion으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심지어 Efisga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캐나다의 공식 명칭은 그냥 캐나다다. 과거에는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 으로 불렸다. 사실 자치령이라는 번역은 다소 부적절할 수도 있다. 흔히 자치라고 하면 어떤 주권 국가에 예속돼 있는 걸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1930년대 이후 자치령들은 공식적으로 영국(본국, United Kingdom) 정부와 동등한 관계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대영제국(British Empire) 안에 있는 자치 공동체(autonomous community)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이후 자치령들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자치 지역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 시기부터 군대도 영국군과 분리됐고 외교도 독자적으로 했기 때문. 이에 따라 영국은 캐나다 등 자치령들을 직접 수직적으로 통솔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영국과 각 자치령들 사이에 결속을 유지하기 위한 협의체로서 탄생한 게 영연방이었다. 지금은 원래와 성격이 많이 변했지만 자치령의 지위가 승격된 원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기여한 뒤 이들이 영국 정부에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982년에 영국 의회와 캐나다 의회가 캐나다법(Canada Act)을 통과시켜 캐나다가 영국과 완전히 남남인 독립국가가 되자, dominion을 없애고 '캐나다'를 법률 등에서 공식 명칭으로 쓰게 됐다.


본래 당시 캐나다 현지의 영국계 주민들이 원한 명칭은 Kingdom of Canada, 즉 캐나다 왕국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 제안을 듣고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괜히 옆에 있는 미국하고 쓸데없이 마찰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 당시만 해도 미국은 영국의 왕정 체제에 커다란 반감이 있었는데 코앞에다가 대놓고 영국 여왕(빅토리아 여왕)이 군림하는 새로운 왕국의 탄생을 선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도발로 여기기 충분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은 적대 관계가 아니었지만 미국 독립 전쟁을 치른 지 1세기도 채 안 지났고 미영전쟁을 치른 지 5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지금과 달리 당시 미국인들은 영국에 악감정이 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으로서는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고 싶어서 결국 Dominion of Canada를 정식 명칭으로 결정했다.


현재

단풍잎 모양 때문에 흔히 '메이플 리프 플래그(The Maple Leaf Flag)' 라고 한다. 빨강 단풍은 캐나다의 18세기부터 축복받아온 자연과 환경을 상징하고, 더 나아가 캐나다 자체를 상징하는 국가적 문양이다. 가끔 단풍의 독특한 모양이나 꼭지점 갯수에도 의미가 담겨져있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그냥 실험 결과 바람에 날릴 때 제일 선명하게 보이는 모양이라서 채택했다고한다. 색깔은 캐나다의 상징색인 빨강과 하양을 사용하였다. 이 상징색들은 영국의 조지 5세가 빨강은 영국계 캐나다인들을 상징하기 위해 유니언 잭의 빨간 십자가에서 따왔으며, 하양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을 상징하는 색으로써 프랑스의 샤를 7세 때부터 사용되어온 프랑스 황실 문양의 색깔로부터 따왔다. 따라서 국가 대표팀들은 주로 빨강과 하양 유니폼을 입는다.


일설에는 캐나다 국기의 하얀 부분은 본토를 상징, 양쪽의 빨강은 각각 본토를 둘러싼 태평양과 대서양을 뜻하는데, 이 바다가 붉은 색으로 표현된 이유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온 바다가 희생자들의 피로 얼룩진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 학교에서 이 내용을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해당 설도 루머로 치부할 정도는 아닌듯하다.


캐나다의 옛날 국기였던 Canadian Red Ensign.

캐나다는 국기가 채택되기 이전이었던 건국 초기부터 유니언 잭이 포함된 영국 해군의 국기인 Red Ensign을 받든 Canadian Red Ensign을 비공식적 국기로 사용해왔으며, 이 Canadian Red Ensign은 세계대전 동안에도 캐나다군을 대표하는 국기로 사용되어 드디어 1945년 의회에서 윌리엄 멕켄지 킹 수상이 캐나다의 공식 국기로 채택하였었다. 하지만 1956년, 이집트 수에즈 전쟁의 중요 중재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당시에는 자유당 대표였던 레스터 피어슨 수상이 이집트에 중립적인 위치로써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자 했으나 당시 전쟁에서 영국군과 대치 중이었던 이집트의 지도자 나세르가 "국기 보니까 영국 국기 들어간 게 딱봐도 영국 편인데 중립은 무슨, ㅉㅉㅉ"라며 파병을 거부했고 이에 화가 난 피어슨은 캐나다만을 상징할 수 있는 국기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뭔가 묘하다. 또한 Canadian Red Ensign은 예전부터 프랑스계 캐나다인들로부터 자신들은 영국계가 아닌데 아무리 국기에 우리를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가도 그렇지 왜 영국국기가 들어간 국기를 사용해야 하냐면서 반발해 문제시 되고 있었다. 웃기는건 영국계 국민들은 자기들 국기에 백합이 들어가던말던 아무 감흥도 없었다고 한다.

자존심 하난 조상들한테서 확실히 물려받은 것 같다


1963년, 캐나다의 수상으로 당선된 피어슨은 새로운 국기를 채택하기 위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기 디자인 응모전을 실시하였는데 국기를 변경하는 것을 반대하는 보수당과의 기싸움에 유니언 잭을 유지하자는 영국계와 새 국기에 프랑스 왕실 문양인 백합 등의 프랑스계를 상징하는 요소를 더 확실히 넣고 싶다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갈등까지 겹쳐 응모된 디자인들 중 새 국기를 채택하는데 무려 1년간 탁상공론이 이어진다. 드디어 응모전을 실시한지 약 1년 후, 3,541개의 응모작 중 현재 국기의 디자인이 당선작으로 채택 되었는데 이 디자인은 역사학자 조지 스탠리가 우연히 캐나다 사관학교의 휘날리는 국기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응모전 마감 직전에 제출한 작품이었다. 스탠리는 캐나다의 국기는 영국계나 프랑스계 등 특정 민족을 상징하는 요소로 국민들을 분열시키면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하여 캐나다의 상징 중 제일 중립적인 단풍잎 문양만 들어간 국기를 디자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1964년 10월 22일에 현재의 국기가 채택되었고 1965년 1월 28일에는 캐나다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캐나다의 국기로서 공포되었으며, 같은 해 2월 15일 국기 게양식 행사에서 그동안 캐나다 국회의사당을 지키던 Canadian Red Ensign을 내리고 최초로 새 국기를 게양하였다.


단풍잎의 역사적 상징성

기묘한 것은 퀘벡 주에서는 이 국기보다 주기(州旗)인 과거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백합 문장을 선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메이플 시럽의 최다 생산지가 바로 퀘벡 지역으로 서부에서는 안 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단풍잎은 원래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한 예로 1834년 몬트리올 성 세례 요한회에서 이 단풍잎이 단체의 표식으로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지정되었다.


여기서 캐나다인이라는 것은 물론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지칭한다. 캐나다라는 나라의 시초부터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상징으로 쓰여왔던 이 단풍잎이 60년대 국기로 지정된 후부터 연방과 통합의 상징이 된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기타

여담으로 한국이나 미국처럼 국기에 대한 경례는 없지만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매일 수업 시작 전에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일 년에 몇번 현충일등 기념일에만 부르는 학교도 있다. 알버타주의 캘거리 교육청에서는 학교 재량에 맡기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매일 아침 따라 부르지 않더라도 국가를 연주하는것을 권고하고있다. 알버타주 교육청 직속 학교들, 그러니까 도시가 너무 작아서 교육청 유닛이 따로 없는 경우에는 국가를 아예 안튼다. 심하면 하루 종일 학교에서 반을 옮겨다니며 수업을 했음에도 국기한번 본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온타리오 주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매일 아침에 부르는 듯 하다. 물론 초등학교 이후로는 대부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는 <O Canada(오 캐나다여)>. 1880년 퀘벡 주의 아돌프바질 루티에(Adolphe-Basile Routhier)가 프랑스어로 쓴 가사에 칼릭사 라바예(Calixa Lavallee)가 곡을 붙였다. 단풍잎과 마찬가지로 원래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상징하던 것이었으나 영어 가사를 따로 만들어 영국계에서도 불리기 시작했다. 작곡이 된지 정확히 1세기 후인 1980년 연방의 국가로 지정되어 지금은 도리어 연방의 상징이 되어있다(그 전에는 영국 국가가 공식적인 캐나다 국가).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국가의 공식적인 가사는 영어 가사와 프랑스어 가사의 뜻이 서로 다르다. 또한 퀘벡인들을 상징하는 곡은 1975년 작곡된 <Gens du pays(나라의 사람들이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본래 북미 프로 스포츠에서는 미국 팀들이 경기 전에 성조기를 유명 가수를 불러서 독창으로 처리하는데 캐나다 팀 홈경기에서 연주되는 <O Canada>는 대개 떼창이 벌어진다. 그리고 영어와 프랑스어 가사를 번갈아 부르는 게 관례지만, 영어권 지역에선 그냥 영어로 퉁치기도.


캐나다가 헌법을 세우고 독립국이 되기 직전까지는 The Maple Leaf Forever! 라는 곡이 쓰였다. 식민지 답게 영국인이 쓴건 아니고, 캐나다가 참전한 리지웨이 배틀에서 알랙산더 무일이라는 군인이 1866년 리지웨이에서 교전한 후 감명받아 작사 작곡한 노래다. 


이론적으로 1980년대까지는 쓰였으므로 40대 50대라면 들어봄직도 했을텐데 역시 누가 O Canada 가사도 똑바로 모르는 캐나다인들 아니랄까봐 옆에서 부르고 흥얼거리고 난리쳐도 '응? 그거 생판 처음 듣는 노랜데?' 하고 반응한다. 한국이나 아일랜드 등 다른 피식민 국가들의 경우처럼 어쩌면 헌법을 세우고 독립국이 된 캐나다에서 옛 식민지 시절 노래를 부르니 모른다고 오기를 부린다고 추측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영연방인 게 자랑스럽다는 사람들이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찬양하는 왕당파들도 이 노래를 모른다는 걸 봐선 그냥 잘 모르는 쪽에 가깝다. 영국계나, 이쪽에 별다른 이해 관계가 없는 아시아계 캐나다인들은 잘 알려주면 입을 모아서 O Canada 보다 낫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나, 퀘벡에서 온 프랑스계라면 항의하며 발광을 할테니 주의.


물론 여기서도 퀘벡 주가 아니고서는 프랑스어를 섞어 부를 때면 영어 쓰는 팬들의 목소리가 다소 잦아드는 면도 있지만 영어 가사라도 안다면 꽤 따라부르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물론 꼭 캐나다 팀 경기에서만 연주되는 것은 아니고 캐나다 팀이 미국 원정을 갔을 때도 가끔 연주된다. 시애틀처럼 지리적으로 캐나다에 매우 가까워서 캐나다 팀이 원정오면 캐나다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린다거나 미국에서 국가 불러달라고 초대한 가수가 캐나다 사람이라거나 등등 여러 이유가 있으며 반대로 미국 팀들이 캐나다에 원정왔을 때도 종종 미국의 국가, 성조기가 함께 연주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과 친하다곤 해도 은근히 미국에 대한 경쟁심이 있는 캐나다 팬들은 성조기가 불릴 때면 애써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심하게는 수줍게 야유까지도 한다고 한다.


2014년 11월 18일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와 미국 내슈빌 프레더터스 경기 시작 전 국가 부르는 타이밍에 기계결함으로 마이크/스피커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성조기가 중간에 끊기자 경기 보러 온 캐나다 하키 팬들이 떼창으로 이어주는 훈훈한 영상이다. 남의 나라 국가까지 꿰고 있다. 국가 단위 츤데레인가요? 아닐겁니다.


캐나다의 뮤지컬 배우 라민 카림루 가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뉴욕 양키스의 양키 스타디움 경기에서 양국 국가를 부르는 영상. 보통 원정팀 국가를 먼저 부르고 홈팀 국가를 나중에 부른다.


사우스파크 버전도 존재한다. 들어보기


영연방왕국(Commonwealth Realm)의 일원으로서, 영국 국왕을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 삼되,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는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선출된 총리가 맡는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다. 또한 총리의 추천으로 국왕이 본인을 대변할 총독을 캐나다 사람 중에서 임명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총독이라는 자리는 실제로 국왕이 자신을 대표하여 식민지를 다스릴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였기에 실질적인 자리였으나, 캐나다가 점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권한이 줄어들어 현재는 캐나다에 놀러오는 귀빈들을 맞이해주거나 의회해산권 같이 국회가 이미 결정한 중대 사항에 명목상으로 허가 도장을 찍어주는 상징적인 자리로 축소되었다. 국회의원을 총리가 해산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아 '가장 높으신 분'인 영국 여왕의 대리인이신 총독의 손을 빌리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회 해산은 총리 및 장관 달랑 몇 명이 수백 명의 국회의원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의회 해산권의 행사에는 총독 같이 더 높은 권위를 요구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26년에 빙(Byng) 총독이 캐나다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당시 캐나다의 총리였던 맥켄지 킹 (Mackenzie King)이 의회 해산을 요청하자 거부했던 적이 있다. 이에 빡친 킹 총리는 대놓고 캐나다의 총독은 자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못박는 내용이 담긴 발포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을 영국 국회에 제출하여 통과시켰다. 본국의 뒤통수


영국의 의원 내각제를 받아들인 나라로 338명의 하원의원은 전국 총선거를 통하여 각 선거 지역별로 배출되며 105명의 상원의원은 총리의 추천으로 총독이 임명한다. 일반적 의원 내각제 국가처럼 총선거에서 가장 많은 국회 좌석을 확보한 정당의 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스티븐 하퍼 전 총리도 2011년 총선에서 자신이 출마하여 당선된 캘거리 남서 지역의 하원의원을 겸했고, 쥐스탱 트뤼도 현 총리도 2015년 총선에서 퀘벡 주 몬트리올의 한 선거구의 하원의원을 겸하고 있다. 선거에서 두 번째로 제일 많은 의석을 차지한, 즉 야당들 중에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정당을 Official Opposition이라고 한다.


캐나다 의회의 또다른 특이한 점으로는 위에 나온 의회 해산권을 들 수 있다. 캐나다의 총리는 제시된 헌법에 위배되지 않고 필요가 있다고 느끼면 총독에게 현재 의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실시하여 새 의원들을 뽑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물론 재선거는 총리 본인도 치뤄야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선거에서 패하여 총리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지닌다. 그와 더불어 총리 내각이 제출한 법안들이 계속하여 의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하원의원들에게 표를 얻지 못하면, 내각 불신임이라 하여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총리 내각은 사퇴하거나 강제로 총독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해야한다. 의회 해산으로 인한 재선거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재선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총리와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5년이다.


2006년 총선에서 스티븐 하퍼 총리의 보수당이 국회에서 과반수의 좌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적이 있다. 이에 과반수의 좌석을 차지한 야당들이 연합하여 하퍼 정부를 내각 불신임으로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보였고, 결국 하퍼 총리는 자신이 먼저 총독에게 재선거를 요청하여 2008년에 재선거가 실시되었다. 재선거 이후 보수당은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입지를 강화했으나 여전히 과반수 좌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하였고, 2011년에 야당들이 또다시 연합하여 이번에는 내각 불신임으로 하퍼 총리가 총독에게 다시 한번 재선거를 요청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야당들은 막강한 우세 속에 총선을 치렀으나 결과는 보수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하며 다수당이 되고 야당들은 망했다. 게다가 매번 보수당과 여당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자유당은 대패하며 40여 석을 잃어 제 3의 정당이 되어버리고, 대신에 30여 석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신민주당이 103석을 확보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이 되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2011년 8월 말에 암으로 사망한 잭 레이턴 당대표 의원의 리더십이 빛을 발휘한 케이스. 자유당과 더불어 퀘벡 독립을 주장하는 블록 퀘벡콰(Bloc Quebecois) 역시 40여 석을 잃으며 참패를 기록. 비록 보수당이 다수당은 되었지만 신민주당 입장에선 아주 망했다고 보긴 그렇다.


2015년에 열린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되면서 10년 동안이나 총리였던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는 물러나게 되었다. 새 총리는 쥐스탱 트뤼도다. 쥐스탱 트뤼도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도 캐나다의 총리였다. 처음에는 토마스 뮬케어가 지휘하는 신 민주당에게 밀리면서 제 3의 정당까지 지지도가 떨어졌으나 점차 역전하여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쥐스탱 트뤼도도 신 민주당 만큼은 아니지만 진보적인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그 중 하나는 5년동안 재정적자를 내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과 마리화나 합법화가 있다.


많은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정부에서 일하는 여러 아시아계 의원들을 만날 수 있다. 현재 한국계 연방 의원으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상원의원을 맡고있는 이민자 5세대의 연아 마틴 (Yonah Martin) 보수당 의원이 유일하다. 이 사람은 한인 사회 문화 발전에 힘쓴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인 모란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 외 한국계 의원으로는 1999년에서 2011년까지 노스 웨스트 준주 의회의 의원이었던 샌디 리(Sandy Lee) 의원과 현재 브리티시 컬럼비아 의회의 의원인 제인 신(Jane Shin) 의원이 있다.


캐나다는 정치적으로 성소수자들에게 관대해서 캐나다 우체국이 건국 150주년을 기념해서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우표를 발행했다. 정말 훌륭하다.


캐나다는 캠핑족들이나 사냥, 낚시 같은 야외활동이 취미인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인구 밀집 주인 온타리오(토론토가 있다)에서만 주립 공원이 300군데가 넘게 운영되고 있다.  즉, 사냥과 낚시로 1년 동안 먹을 단백질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가 캐나다다. 심지어 로드킬 된 야생 동물이나 사냥으로 잡은 고기를 노숙자 혹은 불우이웃에게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나라답게 사냥과 낚시에는 면허가 필요하며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는 동물의 수까지 정해져 있다. 한 예로 곰은 일 인당 1년에 한 마리만 사냥 가능하며 꼭 웅담과 내장을 잡은 곳에서 빼내야 한다. 이건 중국인들과 한국인 때문에 생겨난 법이다. 더불어 몇 년 전에는 호수 지역에 흔한 야생 거북이를 정력제 목적으로 잡아먹다가 걸린 한국인도 있었다. 


이런 법을 어기면 부과되는 벌금이 엄청나다. 사냥을 하는 건 자유지만 사냥감을 벌집으로 만들거나 도끼 같은 날붙이로 찍어(!) 죽일 경우처럼 동물들을 잔혹하게 죽였을 때 처벌이 있다. 심지어 총을 맞고 도망간 동물을 쫓아가 확실히 사살하지 않고 방치 하여 고통에 빠트리는 경우도 벌금이 부과된다. 돈을 주면 취득 가능한 낚시 면허와 달리 사냥 면허의 취득은 까다로운 교육 과정과 기타 등등 복잡한 총기 규제를 받는다. 많은 수의 시립, 주립, 공립공원이 있으며 공원의 관리는 매우 잘 되는 수준. 인구수 3500만밖에 안되며 특히 공원이 밀집한 지역이 주로 북쪽임을 감안하자면 굉장한 조직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공원에서 세탁, 샤워, 전화 설비를 사용 가능하다. 캐나다 규모의 나라에서는 전화선이 나라 전체에 깔린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각 캠핑 사이트를 인터넷으로도 예약 가능하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겨울에도 편안히 캠핑이 가능하게 텐트인 유르트(Yurt)를 대여하는 캠핑장도 있다. 공원마다 다르겠지만 상당히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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