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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국이다. 바다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띈다. 또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지형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 서쪽 끝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과의 접경지역에 매우 높은 알타이 산맥이 존재하며, 중부에는 비교적 낮은 항가이 산맥이 존재한다. 그보다 더 동쪽엔 항가이 산맥보다 낮은 헹티 산맥이 있다.참고 남동부는 낮고 평평하지만 거의 전 지역이 사막으로 덮여 있는데 그 유명한 고비 사막이다. 사막 외곽엔 초원이 있으며 북부 지역엔 숲도 있다.


기후는 몽골 전 지역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건조하고 연교차가 극단적으로 크며 겨울이 추운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연교차가 커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건조해진다. 몽골 서부 올랑검은 1월(-31℃)과 7월(19℃) 평균 기온의 차이가 51℃에 이르며, 동부 처이발상도 1월(-5℃)과 7월(18℃) 기온 차이가 40℃에 달한다. 강수량은 다르항(357mm)이나 므릉(207mm) 등 북부 지방이 사잉샹드(111mm)나 달랑자드가드(126mm) 등 남부 지방보단 많은 편이다. 열대야는 없지만 일교차를 고려했을 경우 여름철 낮 최고기온은 한국과 별 차이 없거나 더 더울 수도 있다.


겨울엔 조드(зуд/Zud)라 하는 혹한이 찾아와 큰 피해를 준다. 조드가 일어날 때마다 가축이 죽는데, 1944년엔 700만 마리의 가축이 죽는 극심한 혹한이 있었고, 최근 2010년에도 서북부 옵스 지역에서 50일 동안이나 기온이 -48℃ 밑으로 떨어지는 등의 혹한으로 전국 가축의 17%인 2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역대 최저 기온은 앞에 말한 옵스 지역에서 기록된 -58℃라고. 이런 혹한과 눈보라 때문에 인명피해도 발생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이런 몽골 속담도 있을 정도다. "전사는 화살 한 발에 죽고 부자는 조드(зуд) 한 번에 망한다." 의미는 역시 자만하다 재수 없으면 한 방에 훅 가니 조심하라는 것.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27도라 한다. 이쯤 되면 그냥 대놓고 시베리아 수준인 걸 넘어서 이르쿠츠크나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남시베리아보다도 추운 수준이다. 실제로 나라 자체가 시베리아 남쪽에 바로 붙어 있고 수도도 시베리아에서 가깝다.


덤으로 몽골이 우리나라보다 북쪽에 있어 굉장히 북쪽에 있는 나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프랑스 파리의 위도가 비슷하다. 하지만 기온차는 비슷한 위도인지 인식하기 힘들정도.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빼면 거의 극지방까지 올라가도 이런 날씨 보기 힘들다. 참고로 스웨덴 키루나(북위 67도)의 겨울 평균 기온도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사실 몽골의 추운 기후의 원인을 찾아보면 대륙 한가운데란 위치 외에도 해발고도가 높은 편인 것도 원인.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의 고지대이다.


생물


고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땅만 파면 공룡 화석이 나오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프로토케라톱스나 오비랍토르, 벨로키랍토르, 피나코사우루스, 사이카니아, 테리지노사우루스, 타보사우루스, 사우롤로푸스, 갈리미무스 등 인지도가 꽤 높은 공룡들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견되었다.


게다가 몽골의 몇몇 지층은 백악기 때부터 사막이어서 간단한 손도구만으로도 지층이 쉽게 제거된다. 미국에 전시된 타르보사우루스의 상당히 완벽한 형체의 뼈도 몽골에서 1924년에 헐값에 구입해 가져온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몽골에선 이런 헐값으로 가져오려면 어림도 없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비롯한 고생물학자들이 몽골에서 발굴할 때 보면 정부기관 인사들 및 몽골 학자들도 반드시 가서 같이 연구하고 감시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무단으로 해외로 가져가려던 해외 학자들이 걸려 추방당한 뒤로 이렇게 감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룡 이외에도 히아에노돈이나 엔텔로돈, 곰포테리움, 파라케라테리움 같은 흐산다골 지층의 신생대 포유류의 화석도 꽤 유명한 편이다. 또한 몽골의 동물 화석들은 갓 죽은 동물 뼈처럼 하얀색을 띠고 있어서 이들의 유해가 그리폰과 같은 중앙아시아 신화 속 환상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몽골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대륙에 중심으로 사는 종이며 마못이나 토끼 등 설치류가 많다. 초원에는 몽골가젤이나 사이가 영양 등 우제류가 있으며 몽골야생마가 서식한다. 털이 길고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도 많이 사는데, 중동의 단봉낙타가 야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이 키우는 개체만 남은 것과 달리 쌍봉낙타는 야생에도 많다. 맹수로는 주로 늑대가 많은데 약 1만 마리 수준이다. 그 밖에 눈표범이나 불곰도 존재한다.


몽골 제국의 역사를 제외하면 부족들의 대립의 역사였다.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후 몽골판 백백교 교주 운게른의 사이비종교급 통치를 겪고 담딘 수흐바타르의 지도하에 독립한 후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지배가 한동안 계속된 뒤 자체적으로 민주화되었다.


휴대 전화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초원과 사막이 중심인 국토 지형과 소수지만 존재하는 유목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닐 듯. 다만 공업기술과 생산력이 부족해서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몽골에서 몽골어는 키릴 문자로 표기하지만 불편하다보니 핸드폰으로 문자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할 때는 그냥 로마자로 쓴다. 유목민의 경우 발전기나 무전기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유목민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기 때문에 말을 잘 모는 편이다. 어린이들도 등자나 안장없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편. 특히 차량이랑 오토바이가 비싸다보니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시아가 몇 나라 안되긴 하지만 하여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쩌는 살인률을 보이는 나라다. 10만명당 5건으로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다. 옆 나라 중국은 0.8건.


언어


몽골어가 공용어이다. 하지만 서쪽의 카자흐족들은 카자흐어만 사용하며 몽골어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지만, 소련 붕괴 이후엔 영어, 독일어, 한국어, 일본어도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07년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러시아어도 다시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었다.


몽골의 고민은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남한 면적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인구가 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참고로 인천광역시와 비슷한 인구다. 아주 넓은 땅에 인구가 적은 몽골도 있는데 이스라엘이 인구가 적지만 시나이 반도를 가지지 못 할 이유가 있느냐라면서 1970년대 말에 이스라엘 극우들이나 하레디들이 몽골을 예로 든 적도 있다. 물론 이런 예를 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1981년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게 돌려줬다.


세계적으로 땅은 넓은데 인구가 너무 적은 경우로 언급된다. 300만 인구조차 그나마 이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2009년의 몽골의 인구 밀도를 남한에 그대로 적용하면 남한 인구가 16~17만 명밖에 되지 않는 경우와 같다. (국가별 인구 밀도 순위 참조) 참고로 가축의 수는 도합 7천 5백만 마리가 넘는다. 그리고 몽골내에서 사는 몽골인보다 내몽골에서 사는 몽골인이 훨씬 많다. 내몽골에 사는 몽골인은 500만명을 넘는 정도.


그래도 출산율이 2명대 중반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보니 인구 증가율 자체는 상당한 편이고 고령화 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게 위안. 게다가 2015년 1월에는 300만 명을 돌파할 예정이다.링크


그린란드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국가 및 자치령이다. 독립국 중에서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 750년 전에는 되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하지만 한랭 건조한 기후, 초원과 사막이 대부분이고 큰 하천이 없어 농경에 불리한 지리적 조건 탓에 광활한 방목지가 필요한 목축업이 주력 산업이므로 인구가 증가할수록 오히려 인구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몽골족이 주류지만 서쪽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몽골 서부 바잉을기 아이막의 경우 주민의 90%이상이 카자흐족이다. 그야말로 흠좀무 그 외에도 투바인, 에벤키인, 러시아인, 중국인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굉장히 심각하다. 수도 인구가 전 인구의 3분의 1이다. 최대도시 울란바토르는 인구가 백만 명이 넘는데 제2도시 에르데네트의 인구는 고작 9만 명. 나머지 지방도시들은 1, 2만 명이면 큰 도시에 속한다. 한국이었다면 울란바토르는 광역시 정도 인구는 되는 정도로, 한국에 있었어도 큰 도시이겠지만, 제2도시 에르데네트의 9만 명은 한국에서는 도시 취급도 못 받는 정도 규모이다. 그리고 몽골의 모든 기간시설이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보니 백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여러 모로 한참 버거운 현실.


소련이 존재하던 시기에 몽골에서는 소련의 막대한 지원에 따라 국토 전역에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몽골 특유의 유목생활로 인해 취학률은 70%를 넘지 못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초등학교에 기숙사를 설치해서 학생들을 취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등교육은 거점(각 주에 2~4개교)에 설치하여 기숙학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통해 입학생을 받는다. 몽골 내에서는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상당한 고학력자로 인정 받기 때문에 지방 관청이나 기업체에 취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몽골의 대학들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만 있으며, 전부 국립대학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소재한 대학에는 1942년 소련 당국에 의해 설립된 국립종합대학(National University)이 있다. 의학부, 수리과학부, 인문학부, 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경제학부, 외무학부, 경영학부, 법학부, 사회학부, 언론정보학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외국어문학부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의학부 부설 병원이 설치되어 있다. 


1925년 몽골 공산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중앙사범대학(Central Education College)도 있다. 이외에도 90년대 초반 몽골 교육부의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국립과학기술대학(Nation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1950년에 별도로 설립된 과학기술대학이 있었지만,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의 이공학부를 떼어 내어 기존의 과학기술대학과 통폐합하였다. 그 밖에도 국립농경대학(National Agriculture College), 국립보건대학(Health Science University) 등이 있다. 이 국립보건대학은 국립종합대학 내의 의학부와는 별개의 학교로 기존의 한 곳이던 의료 인력 양성 기관을 다양화 하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국립종합대학의 의학부는 말 그대로 의사만을 양성하지만, 이 곳에서는 간호인력과 의료행정 인력도 함께 양성한다. 


이들 대학의 입시에서 특이한 점은 중앙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격인 국립종합대학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국가 공무원으로의 취직이 보장된 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그 나라의 수위(首位)대학의 입시 성적을 압도하는 현상은 아프카니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케냐, 미얀마 등과 같이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으로,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고 사회적으로 직업이 다양하지 않은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그 학력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동아시아권에 대학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양산되는 고학력실업자(룸펜)을 떠올리면 된다. 이러한 현상에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도 일정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몽골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교사가 수십 년간 1위를 독점해 오고 있다.


실제로 몽골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중등학교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사범대학에 지원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통


몽골은 면적이 매우 넓은 나라지만 인구밀도는 세계 최하위권인 탓에 교통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여 상대적으로 항공교통이 발달해 있다. 전국에 46개의 공항이 있으며 수도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외국인 요금과 몽골인 요금이 달라서 한국인의 경우 절대 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


울란바토르 시역과 그 근교는 어느정도 도로가 갖춰져있는 편이지만 그 외 전국은 제대로 된 도로가 없는 경우도 많다. 지도상에 대로처럼 표시된 길들도 실제로 가 보면 비포장도로에 난 타이어 자국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길인 경우가 많고 교통표지판 따위도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직접 운전할 경우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인 곳도 많다. 버스나 미니밴이 정기적으로 울란바토르와 주요 주도 사이에서 사람들을 실어나르기는 하나, 울란바토르~서부의 바양을기 같은 경우 길게는 50시간 걸리고 몸이 공중에 붕붕 뜨는 험한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느니 비행기를 타는 편이 허리를 위해서도 좋다.


철도 교통도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아래 지도에서 보듯 몽골의 남북을 종단하는 1,113km의 몽골 종단철도 단 하나의 노선뿐이다.


몽골에서 주요 철도는 사실상 중국 베이징역에서 출발해 몽골 울란바토르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을 통해 러시아 철도로 이어지는 몽골 종단철도 단 하나라고 봐도 좋다. 몽골종단철도에서 뻗아나가는 약간의 지선이 몇 있으며, 동부 처이발상 시에도 러시아 국경에서 넘어오는 약간의 철도가 있으나 몽골종단철도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고 몽골 동부는 여행자들도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 존재감이 없다. 때문에 철도를 이용해서 몽골 내륙을 여행하겠다는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 그나마 이 몽골 종단철도 인근에 있는 다르한, 사인샨드, 수흐바타르, 자민우드나 몽골 제2의 도시 에르데네트 같은 도시들은 철도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두 편씩은 다녀서 제한적으로 철도여행이 가능하긴 하다. 몽골 철도는 운임도 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 포장상태가 빈약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보다는 그래도 편하다.


울란바토르 이외의 각 주의 주도는 항공 교통으로 연결된다. 땅이 워낙 넓고 도로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짧은 거리라도 비행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차라리 말을 타고 돌아다니자!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있는 샌드위치 신세이며 이 두 나라에 침략당했던 역사 때문에 이 나라들을 매우 경계한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 기구(SCO) 및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에 참여하는 등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는 이들 국가와 협력하고 있다.


나치즘을 찬양하며 외국인을 배척하는(주로 중국인이 타겟) 네오 나치 극우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사이트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테러가 잦다며 자국민에게 여행 안전 경고를 내렸다.


좀 의외겠지만 터키가 몽골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고 한다. 몽골에 남은 흉노, 돌궐 역사를 자기들 조상 역사로 봐서인지 몽골에 있는 돌궐 재상 톤유크 유적지 발굴에 투자 및 인력을 보내는 것도 바로 터키 측이다.비석 사진 덕분에 몽골과 터키는 몽골땅의 옛 유목제국의 역사가 서로 자신들의 역사라고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영세 중립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2010년 들어 혐중국주의가 확산되어 중국인을 대상으로 폭행하는 집단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워낙 이쪽의 역사가 한족과 유목민족의 싸움이다 보니 이런 성향은 제법 예전부터 있었다. 중국에서 오랑캐라고 멸시하듯 몽골도 중국인을 "호자"(хужаа)라고 부르며 멸시하기도 했다. 호자는 "돼지를 기르는 놈"이라는 얘기다. 몽골은 목축을 고결하게 여겼기에 돼지를 기르는 것을 멸시했다. 하지만 반중의식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한족에 대해 크게 경계심을 가지게 된 근현대에 이르러서이다.


중국은 중국령 몽골족이 몽골인보다 더 많은 사실에 힘입어 중국 소수민족인 몽골족이 주류인 내몽골자치구에선 칭기즈 칸이 중국인이라고 무덤이나 여러 가지를 세워둬서 몽골공화국 몽골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같은 민족인 외몽골인과 사이가 나쁜 내몽골인이 혈통상으로 외몽골인들보다 정당성이 더 강해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몽골이나 외몽골이나 케레이트부의 동양계 알타이 유목민이지 실위부의 보르기진 계통하곤 거의 관련이 없다.


어쨌든 사서에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무덤을 내몽골에 조성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중국이 내몽골에 저런 일을 하는 것은 몽골을 중화민족에 편입시키려는 막북공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극우들이 주장하는 소리는 중국 내부에서도 당연히 말이 많으며, 일부 의식 있는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원나라는 몰라도 칭기스 칸이 어떻게 중국의 역사냐고 말하면서 이런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몽골-중국 간 갈등의 기원을 찾자면, 멀리는 원대, 일단 청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 몽골은 중원, 티베트, 위구르 지역과 함께 청에 병합되어 있었다. 다만 청은 한족이 아닌 만주족의 국가였고 오히려 후금시절 만몽 연합정권의 성격을 가지고 중국을 다시 정복했으며, 청은 주변부 지역들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원과 남부에서는 명나라를 계승한 중국의 천자를 칭하고, 북방에서는 몽골제국을 계승한 칸이 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왕조였다. 티베트는 스승의 나라로 존중해 주었고, 위구르는 식민지 취급, 만주는 성지 취급하여 만주족 외의 민족은 출입금지, 몽골은 일찍 복속된 내몽골과 후에 정복된 외몽골을 따로 취급, 분리했고 징기스칸의 성씨를 계승하는 내몽골의 보르지긴 황족과 만주의 황족은 정략 결혼을 했으며 청의 황제는 칸위를 겸했다. 더군다나 중국과 호흡을 같이한 몽골은 내몽골이지 현대 몽골국인 외몽골이 아니다. 반면 외몽골은 준가르부를 정복한 건륭제 때에 위구르, 티베트와 함께 복속시켰고 그나마 반 독립지나 다름 없었다.


한족의 독립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외몽골 역시 독립을 선언하지만, 중국은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청나라와 그 소속부 지역, 민족들의 관계에 대해 서구식 속령의 개념으로 이해, 도입하였다. 구 청나라의 모든 영토와 민족에 대한 지배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주장, 위구르, 티베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제 사회에서도 이를 승인하여 몽골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소련이 몽골의 독립을 도왔으며 중화민국과 전쟁을 치르던 중국을 지원하는 대가로 외몽골의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다. 소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독립국 몽골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 역시 과거에 워낙 몽골에게 당했던지라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여기서는 반대로 대한족주의자들의 몽골인 폭행도 일어난다. 일단은 청나라의 영토를 운운하지만, 민족감정을 들여다보면 대놓고 '중화민국은 최초로 만주고 몽골이고 뭐고 북방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한족이다' 라며 뭔가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중국이 몽골을 지배하는 것을 복수 정도로 여기는 듯. 이따금 몽골인과 중국인 키배를 보면 매우 살벌하다어쨋든 수틀릴 대로 수틀린 골이 깊은 관계.


하여튼 현재까지도 은연 중에 중국이 가하는 압박이 많은 탓에, 몽골인은 중국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몽골의 중국 항구 이용 불허. 내륙국인 몽골은 자원을 수출하려면 천상 타국의 항구를 이용해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중국은 반중 감정을 가진 몽골을 좋아할리가 없어 몽골의 이러한 항구 이용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문제는 그나마 우호적인 러시아는 이미 극동 항구가 포화 상태이며 몽골인은 러시아 또한 믿지 않는다. 그래서 라선 등 북한의 항구를 개발하려 기를 쓰는 상황이고 심지어 라선 개발을 위해 북한의 대러 채무 중 90%를 면제해주기도 했다. 북한은 뭐. 덕분에 몽골은 잘 드러나진 않지만, 러시아 이상으로 한반도 통일을 은근하게 원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워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식량의 양 또한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만리장성이 생긴 이유 역시 만리장성 이북은 농업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토지와 기후를 가진 땅이기 때문. 이들을 넘어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경제 문제 또한 존재한다. 몽골의 무역 상대국을 보면 몽골의 수입의 45%, 수출의 9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일 정도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항구의 경우 홍콩에서 항구를 쓰도록 해 줘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울란바토르-홍콩 간 화물기 및 중국을 종단하는 국제 화물철로로 다시 운송한다. 근데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하자 중국측은 반발하며 2016년 12월 1일부터 몽골에 대한 화물비징수를 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게다가 몽골의 광산전기공급도 차단시키는 등 보복에 났고 타격을 입고 있다. 결국 백기를 들었고, 방중한 몽골 외무장관은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밝혀 중국도 제재를 해제하면서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한족계라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 남방 중국인의 경우 북방 중국과 달리 마찰도 없고 이렇다 할 접점이 없어 사이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몽골인들 일부는 중국이라는 정체성도 부정하는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싱가포르는 민족만 한족계이지 영국의 영향으로 영국식 영어가 국어고 중국대륙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해서 되려 이국적인 관광지로 울란바토르를 자주 찾는다.



원래 중화민국은 청조의 후계국가를 자청하기 때문에 대륙시기부터 원칙적으로 몽골 전역을 자국 영토로 간주했고 현재의 몽골 정권은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간주했다. 물론 몽골 역시 그런 중화민국을 독립을 위협하는 적으로 명목상으로만 봤다. 하지만 어차피 명목상이고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하니 그냥저냥 지내는 관계이다. 냉전 시절부터 이미 몽골 인민 공화국은 중화민국보다는 중화인민공화국을 현실적으로 더 적대시했다. 게다가 중화민국도 요즘 들어 반중감정이 두드러지는 판이니 두 나라는 2002년부터 비공식 대표부를 두고 있다.


2012년에 중화민국은 헌법 해석을 변경해 몽골의 독립을 승인하고 몽골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사실상 철회했다.


러시아와의 관계


북쪽 또한 만만치 않은 국가인 러시아. 러시아와의 관계 또한 그다지 영 좋지는 않다. 소련 시절의 공산주의 운동 때문에 몽골의 자랑 칭기즈 칸을 지옥에서 기어나온 대마왕으로 그려내고 모든 민족 관련 문화를 부정하게 했던 70년 가까운 역사가 있기 때문. 심지어 1960년대, 몽골의 교육부 장관이 조상의 역사를 알자며 칭기즈 칸 유적지를 발굴하고 논문을 펴내자, 관직에서 박탈하고 시골로 쫓아냈다가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소련은 유목을 금지하고 몽골의 전통을 파괴했는데 할힌골 전투를 계기로 몽골과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에게 반제국주의, 몽골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몽골 전체 인구의 5%나 되는 몽골인들이 숙청 당했고 그 와중에 몽골 여인들은 러시아 남성들에게 강간당하여 황백 혼혈을 낳기도 하였다. 하여튼 외교적으로는 외롭기까지 한 안습 국가이다.이웃나라가 다들 그렇긴 하지만


몽골 내 러시아인은 5% 정도로 백인인데다 정교회를 믿어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이질적이라 몽골 사람들은 매우 싫어한다. 침략자로 인식한다. 어쩌면 한족보다도 이 러시아인을 더 싫어한다고 볼 수 있는 게 외몽골은 신해혁명 이후 중국의 입김은 벗어난 지 오래이나 러시아는 소련 시절 몽골을 위성국화하며 군사기지까지 주둔시키는 등 사실상 자국령 취급했고 위에 나온 것처럼 지독한 내정 간섭을 가했다. 소련은 일본과 전쟁이나 2차 대전 당시에는 몽골인들을 억지로 징병시켜 전쟁터로 내보내게 했고 몽강국과 외몽골을 합쳐 몽골 전체를 소련의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병합하려 하였으며 몽골의 민족문화, 티베트 불교와 몽골의 성씨까지도 소련 치하에서 씨가 말랐다. 무엇보다 몽골 최대 영웅인 칭기스 칸을 수단방법 안 가리고 폄훼하고 흔적을 없애려고 했다. 그러니 러시아인에 대해 감정이 좋을 리가 전혀 없다. 게다가 부랴티아 출신 몽골인들도 많은데, 이들 역시 근현대 러시아에 뺏겨 합병된 처지이건만, 외몽골의 주류인 할하 몽골족이 아니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소련의 위성국이 아니었으면 티베트처럼 외몽골도 중국에 다시 합병당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러시아를 미워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다. 마오쩌둥 정부는 소련과의 관계를 중시해 몽골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에 끼어있는 안습한 탓인지 미국에 대한 감정은 나쁘지 않다. 아니, 적극적으로 친하게 지내려고 몽골이 노력한다. 특히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구원해줄 세력이 미국밖에 없다고 여기는지 몽골은 공식적으론 중립이라지만 실질적으론 친미국가라 할 수 있다. 미국과의 경제 교류도 굉장히 활발하다.


2003년에 조지 워커 부시가 몽골에 방문할 당시 크게 환영하며 성대한 대접을 했고 여기에 부시는 "최근 들어 내가 방문하는 나라마다 나를 21세기의 아돌프 히틀러라며 욕하는 걸개와 야유가 넘쳐나기 일쑤였는데, 이렇게 나를 환영한 나라는 정말 오랜만이다."라고까지 반응하며 감사를 표했다. 방문한 부시 전 대통령은 몽골 대통령과 회담을 가져 미국과 몽골이 군사, 안보 분야에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후 몽골은 2007년과 2011년에 대통령이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양국의 협력을 다지는 협정까지 맺었다.


미국 입장에선 몽골이 친미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우군을 만들어 좋은 일이고 몽골은 중-러에 대한 일종의 외교적 견제구인 셈. 그리고 몽골은 항상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에 전투병도 파병하여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과 실전도 치뤄 저항세력 여럿을 사살하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이 아닌 평화유지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한 것과 달리 몽골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소수나마 전투병을 파병했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나 중국에서 꽤나 불쾌한 반응을 보였으나 몽골이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하는게 없다보니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반발이나 견제를 하지 않는다. 여하튼 당시 일부에선 몽골에 미군 주둔 문제까지 나오는 거 아니냐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지금은 당연하다.


중국 인근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하여 중국 내 한국대사관 진입이 어려울 경우 몽골 밀입국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몽골로 가기 위해선 몽골의 모래사막을 지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 크로싱을 보면 알겠지만 길도 없는 모래사막에서 죽기 딱 좋은지라 동남아(라오스-태국) 루트를 많이 선택한다. 다만 태국가다 라오스에서 잡히면 북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에 쳐들어간 적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일본과 사이 좋은 편이다. 일본 애니가 몽골에서도 방영되고 있고, 일부 오덕도 존재하고 있다. 몽골인들이 스모선수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친일 발언을 하기도 한다. 사실 중국 견제를 위하여 일본이랑 관계 개선에 정계가 노력하는 점도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이랑 굉장히 사이좋은 부탄과 똑같다. 부탄처럼 중국이 일본에게 당한 건 좋아라 고소해하며 일본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닥치고 무조건 친일도 아닌데 부탄처럼 중국이 싫다뿐이지, 무조건 일본이 좋다능!도 아니며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나라들 외교도 생각하기에 상임이사국 문제에 대해서도 부탄처럼 그닥 일본 편 들어주지 않으며 중립적으로 대하거나 기권하며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권 눈치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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