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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 있는 나라. 러시아와 동쪽에서, 폴란드나 헝가리와 서쪽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Укра?на)는 국가명은 우리의 땅 또는 내륙이라는 뜻이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지금도 러시아의 변방쯤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인 있는 뜻 중 하나인 변방, 끝자락 등의 의미로부터 변방에 있는 나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우크라이나인에게 이런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한다. 우크라이나 이름의 뜻은 폴란드어로 주변땅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서부 우크라이나는 대부분의 역사동안 폴란드 땅이였다.


수도는 키예프이다. 우크라이나어 발음으론 키이우라고 읽는다. 역사 시간에 러시아의 모태 국가인 키예프 대공국(키예프 루시)으로 유명하지만, 키예프 공국 전체 영토로 치면 상당히 남쪽에 있다. 또 그 바탕 민족이 바이킹인와 슬라브인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결국 이 키예프 공국을 공통조상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예전에는 우크라이나인들 본인들을 우크라이나 루스로 부르기도 했다.


면적은 남한의 6배 크기이며 산지가 별로 없고 토질이 매우 좋아 국토 대부분이 비료가 필요없는 비옥한 흑토인 체르노젬으로 이루어져 옛날부터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유명했다. 세계 최대의 식량수출국이었던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독보적이었고, 2011년에는 곡물 수출량이 세계 3위에 달했을 정도. 이렇게 농사가 잘 되는 땅에서 그 유명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발생했으니 주민들로서는 기가 막힐 수 밖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반러시아 감정역시 여기에 근거를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지만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동부와 남부에서 러시아어가 많이 사용된다.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만 사용되는 비율이 높고, 가운데쯤에 있는 수도 키예프와 중부지역은 반반 경계선 느낌이다.


1인당 GDP는 2,052$로 옆나라 몰도바 다음으로 유럽 제2의 빈국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하경제가 빠져있어 실제 1인당 GDP는 이보다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내전을 겪으면서 화폐가치와 경제가 붕괴하면서 2016년 2월 기준 월평균 급여는 약 165달러로 떨어젔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1378흐리브냐로 약 50달러 수준이다. 주급이 아니다, 월급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장바구니 물가는 대한민국의 1/4 ~ 1/3 수준이다. 다만 우크라이나산 식료품에 한한 이야기이며 공산품의 경우 수입품이 대부분이며 대체로 가격이 높은 편이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공산품들은 환율에 따라 변동이 심하며 대한민국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또한 유럽이 대체로 다 그렇듯 마트의 식재료는 매우 싸지만 식당에서 하는 외식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렇게 물가가 싼 우크라이나에서도 전통 요리 같은 걸 먹으려면 한 끼 최소 5천원 정도는 써야 한다.


사실 이 나라는 경제적 잠재력 자체는 충분하다. 비옥한 땅과 많은 고학력 인재들을 보유하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각종 첨단 공업시설이 많이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련이 해체될 당시에는 가장 발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평가되곤 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써먹질 못해서 문제지.


그러나 이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자면 위키러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걸 하늘에 감사해야할 판으로 대한민국과 비교해서 보면 대한민국=천당, 우크라이나=지옥이라 불리울 정도의 인외마경이다. 나라 안에서는 맨날 친러시아와 반러시아가 나뉘어서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는 형국이고 온갖 질병과 할렘가 문제, 체르노빌로 인한 방사능 문제 등 온갖 골치아픈 문제들이 쎄고 널려있으며 먹고 살기 힘든 나라가 늘 그렇듯 범죄율 역시 어마무지한 수준이다. 거기에 정치인들이 나라를 개판으로 다스려서 유로마이단 등 문제가 계속 발생되고 있다.


크림반도 최남단 항구도시 얄타에서 얄타회담이 열렸다. 



바이킹족과 슬라브인들이 세운 첫 국가인 키예프 공국이 우크라이나의 시초다. 그래서 이 키에프 공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원조국이다. 한마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뿌리다. 당시 세계구급 깡패였던 몽골(킵차크 한국)의 습격 때문에 키예프 공국이 완전히 멸망하자, 이 지역은 몽골과 투르크계 타타르인의 지배가 계속 이어졌다. 킵차크 칸국이 와해되면서 크림 반도 일대에 타타르인들의 크림 칸국이 독립했고, 크림 칸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번국이라서 무슬림 몽골-투르크(타타르) 세력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키예프 공국 이후 계속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우크라이나인의 슬라브족 국가는 자라나지 못했다. 그러나 멀찍이 북쪽인 모스크바 지역은 투르크 세력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대문에 독자적으로 성장하여 러시아가 된다.


한편 서부 우크라이나는 꽤 일찍 킵차크 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코사크 국가들이 성립했지만 얼마 못 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먹혔고, 이 둘은 폴란드-리투아니아로 합체하며 한동안 동유럽의 깡패로 군림했다. 폴란드가 저물자 이번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를 분할하면서 서부 우크라이나를 둘이서 나눠가졌다. 한편, 동부 우크라이나는 오스만 제국이 계속 지배하다가 17세기에 급성장한 러시아 제국이 투르크와 10여번에 걸친 전쟁을 벌여, 끝내 19세기까지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동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역에 들었다.


러시아는 이후 폴란드를 분할하면서 서부 우크라이나까지 차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의 통치아래서 하나로 모였지만, 이미 동부와 서부 우크라이나는 같은 민족임에도 수백년간 따로살면서 종교-정서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존재였다. 동부 우크라이나는 투르크의 압제를 러시아가 해방시켜 자신을 러시아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 반면, 서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지배를 받으며 어느 만큼 서방화해 러시아를 이질적으로 생각했다. 16세기 이후 형식적으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나 제정 러시아의 지배 사이 왔다 갔다 하며 실제로는 귀족화 된 토착 카자크들 아래 광범위한 자치를 누렸던 키예프를 비롯한 중부 지방은 이 와중에 크게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며 당시 대세를 따라 왔다갔다하는 행보를 보였다.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이 지역은 잠시 독일 세력권에 할양되었지만 곧 독일 제국이 패망한 뒤 이 지역은 무주공산이어서, 볼셰비키·멘셰비키·사회혁명당·민족주의자·극우주의자·무정부주의자들 제각각 무장하여 쟁투를 벌였다. 뜬금없게도 거의 비슷한 시기 우크라이나에서 멀리 떨어진 러시아 극동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신들 관할 극동을 우크라이나국의 일부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조약 이후 우크라이나는 (동)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으로 (공산국가는 아니다!) 각각 분리독립을 이루고, 현 우크라이나 동부지방은 적백내전에서 백러시아에 가담했다. 동서 우크라이나는 곧바로 1920년에 통일을 선언하나, 막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폴란드 제2공화국은 친폴란드 우크라이나인들(주로 서부인)의 요청(+자국의 팽창주의)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갓 건국된 폴란드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해야 자국의 독립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했다. 이에 우크라이나의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없었다)에 도움을 청하면서 공산 러시아와 폴란드가 맞붙은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키예프까지 들어온 폴란드군을 잘 물리쳐 이후 바르샤바까지 몰아붙였다가 선봉대가 두드려맞아 전멸하는 참패를 당하고 이후 밀려 1921년 리가 조약을 맺으면서 서부 우크라이나를 폴란드에 할양, 이곳은 다시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남은 동부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가입하여 한 공화국이 되었다.


러시아에 가까웠던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도 민족주의자들의 독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들은 소련에게 철저히 탄압당했다. 당시 소련 국방장관인 레프 트로츠키는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에서 자란 유대인이었는데,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을 철저히 짓밟으면서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의 사투리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듯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다른 나라가 아닌 그저 자국 변방의 하나 생명선?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푸틴도 마찬가지. 애초에 이쪽에서는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에 우크라이나 지방을 부르는 이름이 '소 러시아'라는 뜻인 말로로씨야였다. 20세기 이전에는 심지어 우크라이나인들 본인들도 별로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종종 우크라이나 일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소 러시아'라고 했으나, 혁명, 내전, 독재, 탄압, 집단 아사, 학살의 피비린내나는 20세기의 상처 때문에 현대에 우크라이나 사람 앞에서 '소 러시아인' 따위 개드립 치다가는 종로에서 북한의 대남도발사 때 인공기 들고 응원하는 것만큼 빨리 다음날의 해를 못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우크라이나 탄압은 트로츠키와는 앙숙이었던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스탈린이 추진한 집단농장화에서 큰 애로사항이 꽃피어서 초절정 아귀지옥으로 바뀌어 수백만명이 굶어죽은 아픈 역사가 있다. 바로 1932년~1933년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 때문에 미국인들이 가진 대공황에 건 뿌리깊은 공포 이상으로 우크라이나가 기근에의 공포심은 크다. 이는 러시아에 건 반감의 연원이기도 하다. 다만 동부 우크라이나는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석탄의 주산지였는데, 스탈린의 무자비한 공업화 몰빵으로 엄청나게 산업화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러시아인 인력이 다수가 이주해와서 살았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니키타 흐루쇼프도 바로 이렇게 우크라이나에 이주해 와서 (태어난) 러시아인 광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른 폴란드 분할 당시, 폴란드에 속하던 서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련이 합병한다. 소련은 서부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우크라이나 사회주의공화국에 편입시키면서 1921년 빼앗긴 영토를 수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서부인들은 이런 소련의 지배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독소전쟁을 개전하고 우크라이나 지역을 독일군이 점령한 초기에 이들을 해방자로 환영했지만, 수탈과 기아, 민간인 학살 등이 나오자 반독으로 돌아선다. 전쟁 기간 중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로 독일과 러시아 양쪽에게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때문에 전사자 포함, 약 700만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안습.


한편 서부의 우크라이나인들은 2차 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에 협력하여 유대인들과 폴란드인들을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벌였다. 폴란드의 경우는 민족적 탄압을 받고 있었고, 경제의 대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불만도 컸다. 이후 독소전쟁으로 독일이 전전의 폴란드 동부 영토로 밀고 들어오자 해당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에 협력하여 해당 지역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에 적극 동참했으며 이후 유대인들이 싸그리 절멸당한 후에는 1943년 봄부터 600년 가럄 함께 살아오던 이웃 폴란드 농민들을 상대로 대량 학살을 벌였다 여기에다가 전후 서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전에 40%에 이르던 폴란드 인들이 싸그리 현 폴란드 영내로 이주되면서 결과적으로 서부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전체 국토에서도 우크라이나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다.


2차 대전 뒤 연합국의 대지분을 보유한 소련은 폴란드의 항의에도 1939년 합병한 서부 우크라이나 영토를 확정했고, 대신 폴란드는 독일의 동부영토를 할양받았다. 서부 우크라이나에 살던 사람들은 원래부터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이었기 때문에 폴란드에게 별로 명분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이 소련의 지배를 달가워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이런 동부-서부의 다른 역사는 이후 큰 갈등의 씨앗이 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서남부 5개 주(리비우, 테르노필, 이바노프란키브스크, 자카르파티야, 체르노브치)는 1939년, 또는 1945년까지 러시아/소련 땅이었던 적이 단 1번도 없었다! 이들 지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을 거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했고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의 지배를 받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소련 영토로 들어왔다. 이들에게 러시아는 철저히 외부세력일 뿐이다.


반대로 몰도바 남쪽의 해안지대인 부자크는 이 때부터 우크라이나의 영역이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1954년에 우크라이나 출신자인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기에 소련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크림 반도를 러시아에게 받는다. 크림 반도의 인구는 110만명을 차지한다. 이후 1991년, 소련에서 쿠데타가 실패한 틈을 타 독립에 성공한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개념은 소련에 맞서고 탄압받으면서 나왔으나, 사실상 2개의 민족에 가까울 만큼 지역별로 러시아에 입장이 다르다. 키예프가 있는 내륙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공업도시 하르키브(제2도시, 러시아어 하르코프)와 항구도시 오데사(제3도시), 크림 반도 등이 속한 동부 우크라이나는 지지정당부터 민족, 언어 구성까지 제법 다르다. 그래서 서부 지방은 러시아에 반감이 상당히 심한 반면, 러시아와 붙어있는 동부 일부 지방은 러시아어를 많이 쓰고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서쪽에 있는 독일, 폴란드와 일단은 친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역사적으로 서부를 집어삼키던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서부를 잃어버린 자기들 땅이라고 여기기에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를 견제하고 있다. 대신에 폴란드는 이미 소련 지배에서 벗어난 우크라이나를 세계에서 최초로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이후 현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을 인정했기에 여기는 동부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보다는 갈등의 여지가 적은 편. 독일 또한 악랄한 소련과 폴란드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켜준 구원자들인줄 알았더니 소련놈들보다 더한 학살을 저지르고 간 일이 있던지라 좋게 보지는 않는다. 북쪽에 있는 벨라루스와는 사이가 나쁜데 벨라루스가 과거 키예프 공국으로 같은 동족이면서도 여긴 러시아 지배를 받아들인 편이기 때문. 둘이 과거 키예프 공국 이야길 하며 서로를 옛 우리땅이라 까고, 벨라루스는 친러시아(친러) 정책이니 우크라이나와 사이가 나쁘다. 여담으로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 시절 벨라루스에게 부득이하게 체르노빌산 낙진을 선물해줌으로써 빅엿을 먹여준 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하지만 남부 크림 반도는 지중해성 온대 기후를 나타낸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업과 소련 시절 지어진 대규모 중공업단지나 제철소, 탄광이라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웃 슬라브 3국 중에서도 경제발전이 많이 뒤처지는 편이다. 여기에는 여러 정치적 문제가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1991년 독립 이후 다른 소련 국가와 같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 변환을 거치는 과정에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특히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은 1996년 하르보바네츠를 오늘날 쓰이는 흐리브냐로 교체했다. 하지만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 등으로 인해 2000년 초반까지 통화 불안정을 겪었다.


이후 2001년부터 경기가 점차 회복세로 돌아서 2007년 통계에 의하면, 2001년 빈곤율 32%에서 2005년 8%로 급감했다. 특히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수출량이 50%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2014년 크림 위기 이후 주요 교역국이었던 러시아와 무역이 중단되면서 GDP에서 약 4%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2016년 5월, IMF는 우크라이나가 부패 청산과 경제 개혁을 진행하는 조건으로 1,750만 달러 가량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로도 자주 연결이 되는데, 농업이 주산업인 서부 지방은 소련 시절 농민들을 탄압해 온 역사(라스쿨라치바니예, 홀로도모르 참고) 때문에 러시아에 반감이 상당히 심한 반면, 공업이 주산업인 동부 지방은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소련 시절 동부 우크라이나 공업지대는 소련 중공업/군수공업의 한 축을 이루었다. 당장 소련 주요 우주발사체 로켓을 설계한 하르트론 설계국, R-36 미사일(NATO명 SS-18 사탄)을 제작한 유즈노예 설계국, An-225로 유명한 안토노프 설계국과 T-64를 제작한 하르코프 공장이 전부 우크라이나에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량의 기계류를 수입했었다.


흑해 연안에 있는 오데사 항구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유명한 영화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학살 장면'이 찍힌 곳으로 유명하고, 건담 시리즈의 '오데사 공방전'이 일어난 곳이며,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터널군인 '오데사 카타콤베'가 있는 곳이다. 길이만 2,500km 이상이라고 근데 이 기록은 중국 서부 핵미사일기지인 '지하 만리장성'에 의해 깨진 듯하다. 무려 5,000km 이상의 길이라고.


저 위 지도에 보이는 세바스토폴항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함대보고 "방 빼!"라면서 한동안 키배를 벌이다가 구 소련의 수상함을 일부 양도받는 조건으로 2014년까지 임대시기를 연장해줬는데,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2042년까지 대여기간이 늘어났다가, 2014년 3월에 도시 전체가 러시아로 넘어가 버렸다.


시간대가 비슷한 경도에 위치한 벨라루스와 러시아보다 빠른 시간대를 쓴다. 그래서 러시아 서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가면 시간대가 더 늦어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두 시간이나 빨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시간대가 경도에 비해 이상하게 느려서 그런 거지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실제 시간에 가깝다.


주변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다양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가 이 나라를 지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가 가스잠가라 마법을 부릴 경우 크게 피해보는 나라 중 하나. 현재는 EU 국가들 투자로 새로운 나부코 파이프라인을 부설중이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하자면, 1986년 4월 원전 폭발당시 하마터면 인구 200만의 수도 키예프를 고스란히 버려야 할 정도의 헬게이트가 열릴 뻔했다. 체르노빌에서 겨우 100km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자칫 증기폭발로 원전 바닥이 완전히 녹아버리면 키예프의 상수원인 드네프르강은 그대로 오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 잠수부들의 목숨을 바친 희생으로 원전의 냉각수를 모두 빼낸 후 극적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헬게이트는 당시 풍향 때문에 낙진을 고스란히 맞은 벨라루스에서 열렸다


동부 지역은 친러적이고, 서부 지역은 반러적인 성향이 강하다. 2010년 대선에서 당선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는 동부의 도네츠크 주에서 무려 90.44%를 득표했으나 서부의 이바노-프란키우시크 주에서는 겨우 02%를 득표했다.


위치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서방과 러시아가 이 나라를 놓고 정치적 패권 싸움을 하고 있다. NATO가 발트 지역과 남, 서동부 일대를 에워싼 지금 우크라이나까지 NATO 손에 넘어가면 러시아는 서방의 MD에 삼면의 영토가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걸 수단방법 안 가리고 막으려 하고 있다.


2014년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종합 순위 6위를 차지했다. 사실 옛 소련 이래 수많은 인재들이 유입된 곳이라 쓸만한 인재는 꽤 많은 나라다. 다만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엘리트층의 수준이 너무 낮은 게 문제다.참고


2009년 11월 17일 인플루엔자 A보다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현재까지 키예프와 르비프 시 지역에 약 100만명 감염에 약 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감기 바이러스와 캘리포니아 인플루엔자가 합쳐진 변종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그러나 WHO 측에서는 변종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변종설을 일단 부정 중. 그러나 과거 인플루엔자 A가 창궐할 때 멕시코가 각종 삽질로 인해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공을 세웠던 데 반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경 일부를 봉쇄하는 등 신종 바이러스 출현에 대처를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대륙에서도 이동 통신 서비스의 발전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에 속한다. 이동통신 주파수를 한동안 군용으로 묶어 놓는 바람에, WCDMA 도입도 국제 평균보다 상당히 늦은 2011년에서야 시작되었다. 그것도 기존 통신사들이 3G를 쓸 수 있게 해 준 형태가 아니라, 3G 전용 통신사를 따로 하나 만들고 기존 통신사들은 로밍을 통해서 3G 망을 이용하였고, 3G 전용 통신사도 2G 망을 이용하려면 역시 로밍을 통해야 했다. 물론 이 과정에 덤으로 돈은 돈대로 나가고 커버리지는 커버리지대로 최악이 되고 이 와중에 유로마이단 덕분에 크림 반도나 동부에 있었던 이동통신 시설들이 뜯겨 나간 건 덤이다. 결국 2015년에 와서야 군용으로 묶어 두었던 이동통신 주파수가 해금되면서 기존 통신사들도 자체적인 3G 망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옆나라들이 LTE를 상용화할 때에도 여기는 겨우 3G가 깔리기 시작하고 있다.


인구 면에서, 아니 생존 자체에서 비참한 경험을 했던 나라. 우선 적백내전이 끝나고 겨우 독립을 하나 싶더니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가 쳐들어와 땅을 낼름해버렸다. 그냥 얌전히 쳐들어왔다면 모를까 양측에서 저지른 '정리 작업'으로 인해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민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이는 애교로 보일 정도의 대사건이 터졌으니, 1930년대의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1933년의 평균 수명이 남자 7세, 여자 10세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으니 그 참상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근을 넘겼나 했더니 이번에는 전쟁.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그 통에 엄청난 사람이 죽었다. 특히 이번에 쳐들어 온건 폴란드와 소련보다 몇 배는 악랄한 나치 독일. 이들의 학살 스케일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시체로 이루어진 퇴적층이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에서 종종 발견될 정도이다. 이 때문에 현지 거주 유대인을 포함하여 7백만명이 전쟁 중에 죽었는데, 이는 당시 인구수의 1/6 이 넘는 숫자다. 그로 인해 1941년~1944년의 기대수명은 남자 15세, 여자 25세에 그쳤다. 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후 베이비붐과 크림반도 획득으로 1950년대 중후반에 대기근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구손실을 만회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에 출산율이 9-1명 정도의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인구성장은 점차 주춤해졌다. 소련 붕괴 직후의 인구는 5,200만을 찍었으나, 소련 붕괴 이후 출산율의 급속한 감소와 해외로의 이민문제까지 겹쳐지면서 인구의 감소가 시작되더니 1999년에 인구 5000만 선이 붕괴되었고 이후로도 인구가 쭉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구는 2013년 1월 기준 4,547만 명이며 1992년에 5200만명을 넘긴 이래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다. 이는 소련붕괴 이후 크게 낮아진 출산율(천 명당 14명. 그래도 이건 2000년대 후반 이후 많이 회복된거다.)과 높은 사망률(영아 제외시 천 명당 11명)을 기록하는 인구구조를 띄기 때문으로, 영아 사망률(천 명당 4명)이 상당히 높다. 출산율 자체는 이미 2001년(08명)에 저점을 찍었고, 이후에는 출산율이 5명대까지 상승하였으며 이에 따라 출생아수도 30만명대 후반 정도에서 50만명선까지 올랐으나(단, 2014년부터는 크림반도 분리의 영향으로 다시 40만선으로 떨어졌다) 사망률이 위낙에 높다보니 현재까지도 인구감소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각 주별로 따로 똑 떼어놓고 보면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때는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은 농촌지역이 많아서 비교적 출산율이 높은 편이고, 도시화가 이루어진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출산율이 낮은 편이다.


이민 나가는 사람도 많고 이민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 1991년~2004년 동안 220만 명이 우크라이나로 이민을 왔고(주로 구소련권의 우크라이나계를 중심으로), 250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이민 온 사람이 많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17%가 이민자 출신이다. 그리고 2014년 이후의 혼란으로 백만 단위의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러시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정체세다. 술을 많이 해서 알코올 중독 문제도 심각한데다가 환경오염문제까지 겹쳤다. 러시아와는 다르게 소련 붕괴 이후에 평균수명이 대폭 감소하는 참사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이후로도 평균수명이 크게 연장되지 않아서 현재까지도 7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으며 덕택에 2012년 기준 세계 제2위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천명당 176명이 사망했다.


총 인구의 78%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인 외에 러시아인이 13% 되는데 이들은 주로 동부와 남부에 거주한다. 서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거의 단독으로 사용되며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중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둘 다 사용된다. 나머지 9%의 소수민족은 0.8%의 몰도바계-루마니아계, 0.6%의 벨라루스계, 0.5%의 크림 타타르계, 기타 불가리아계, 헝가리계, 폴란드계, 유대계, 아르메니아계 등이다.


세계에서 일본에 이어 인구 감소가 가장 빠른 나라 2위로 꼽혔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나라가 내전 중이라 어려울 것으로 평가된다.


2015년 통계 기준으로 정세 불안에 의해 출산율이 급락해서 31로 더 떨어진 데다가, 사망률까지 올라가면서 평균 수명도 오히려 더 짧아지고 말았다. 인구학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4200만명대로 감소했지만 감소세가 오히려 더욱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동구권 유럽이 대부분 그렇듯 정교회 문화권의 국가다.


2004년을 기준으로 하여 우크라이나 정교회(키예프 총대주교청) 38%, 우크라이나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 24%,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11%,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 8%, 기타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이슬람 등이 9%이고 무종교 인구는 9%다.


동방 정교회 내에서 교회법상 위치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교회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뿐이다. 다만 설문조사의 주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더 우세한지, 아니면 그 라이벌인 우크라이나 정교회(키예프 총대주교청)이 우세한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자들 상당수는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특별히 구별하지 않으며, 참석하는 성당의 소속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크게 따지면 중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정교회 인구가 72%로 절대 다수이고, 여기에 서부에 주로 분포하는 그리스 가톨릭교회가 11% 더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상당수 정교회가 실질적 총대주교 관할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체르노빌 피해지역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전체 우크라이나 인구의 67% 사용). 동슬라브어파로 러시아어와 매우 밀접하다. 간단히 말해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를 반반 섞으면 우크라이나어라 카더라. 수도인 키예프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어가 더 널리 쓰인다 한다. 가까운 언어라서 그런지 우크라이나어로 말걸면 러시아어로 대답하고 그러는 일도 흔하다. 러시아어 사용자는 3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민족보다 우크라이나어 사용자가 더 적은 편인데, 이는 우크라이나 민족이면서도 15% 정도인 554만 명은 러시아어를 쓰기 때문이다(전체 러시아어 사용자의 40% 가량을 차지). 하지만 그럼에도 지도에서 보듯 크림 반도와 일부 동부지역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우크라이나어가 강세인 지역이 많다.


우리 또한 외국인이 아니다!

독립 후 우크라이나어의 우위가 강조되면서, 러시아어를 주로 쓰는 주민들은 차별받는다고 느껴 러시아어를 제2공용어로 지정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번번히 무산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어를 포함한 소수민족어를 지역공식어로 인정하는 법률이 폐지되면서 인구의 10%이상이 사용하게 되면 지역 공식어로 정해졌던 소수민족어는 지역 공식어 지위를 박탈당할 뻔 했으나 투르치노우 대통령 권한대행이 해당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20일에 의회에서 다시 러시아어가 제2국어로 지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근데 2014년 10월 3일에 리비우를 방문한 포로셴코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영어에 특수지위를 부여해야 하고 제2외국어로 영어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2015년 2월 3일,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공식어는 우크라이나어가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Пам'ятайте: ан? слова рос?йською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어 역시 많이 쓰이고 있다. 당장 TV 방송만 보더라도 국영 채널인 UA: 페르시(UA: Перший)만 우크라이나어 방송만 하며, 인테르(?нтер), 1+1, 우크라이나(Укра?на) 등의 주요 방송사들은 아직도 러시아어 방송을 내보낸다. 주로 뉴스의 경우 우크라이나어 뉴스와 러시아어 뉴스를 다른 시간에 배치하는 형식으로 한다.


통계에서 보듯 3%의 주민은 우크라이나어도, 러시아어도 아닌 언어를 제1언어로 한다. 루마니아어(몰도바계 18만 + 루마니아계 14만 = 32만), 크림 타타르어(23만)과 헝가리어(15만), 불가리아어(14만)가 대표적. 몰도바계와 불가리아계는 러시아어를 쓰는 인구도 상당하다.


한편 민족어 사용빈도가 낮은 민족들도 있는데, 폴란드계(14만)는 대다수가 비슷한 우크라이나어에 동화되어 10만명 가량이 우크라이나어를 쓰고, 유대인(10만)과 아르메니아인(9만)들은 각각 5만, 3만명이 러시아어를 쓴다.


결국 이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정부 뿐만 아니라 네티즌 사이, 그리고 러시아 네티즌 사이에서도 항상 논쟁거리가 되어 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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